“공인중개사, ‘채무인수’ 법적 성격 설명 의무 없다”
공인중개사가 매매계약을 중개할 때 채무인수의 법적 성격에 관해 조사·확인해 설명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공인중개사의 중개행위는 당사자 사이의 매매 등 법률행위가 용이하게 성립될 수 있도록 돕고 주선하는 사실행위이고, 이는 변호사 등이 하는 법률사무와는 구별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A 씨가 공인중개사 B 씨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2024다239364)에서 원고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2018년 11월 A 씨는 자신이 소유하던 울산의 아파트에 대해 한국에너지공단(공단)과 보증금 2억 원에 부동산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이후 B 씨의 중개로 2020년 5월 A 씨는 C 씨와 2억8000만 원의 아파트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임대차보증금 2억 원은 C 씨가 인수해 매매대금에서 공제하기로 약정했다.
그러나 공단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임차인이 법인인 경우 임차인의 동의 없이는 매수인은 임대차보증금 반환 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공단은 전세금 보장 신용보험회사에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고,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회사는 A 씨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냈다. 2021년 7월 법원은 “A 씨는 보험회사에 2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A 씨는 B 씨와 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이 사건 소송을 냈다.
A 씨는 “공단이 법인으로서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이 있는 임차인이 아니고 매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당연히 승계하는 것이 아니므로, B 씨는 임차인을 참여시켜 면책적 채무인수 계약을 체결했어야 했는데도 이를 간과해 자신이 임대차보증금 반환 의무를 여전히 부담하게 돼 손해를 입게 됐다”고 주장했다.
1심은 A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B 씨가 중개한 매매계약의 계약서에는 임차인이 법인이고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아무런 사정이 없고 △대항력 여부 확인과 임대차보증금 반환의무 관련 법적 효과를 알려주는 것은 공인중개사로서 B 씨의 업무 범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은 B 씨의 주의 의무를 인정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항소심은 “B 씨가 임대차계약서를 매매계약서에 첨부하는 과정에서 A 씨가 매매계약을 통해 공단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하고자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만일 B 씨가 A 씨에게 이러한 내용을 설명했다면 A 씨는 C 씨가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기 전까지는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해주지 않았거나 매매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시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부동산중개행위는 거래당사자 사이에 매매 등 법률행위가 용이하게 성립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주선하는 사실행위에 불과하다”며 “변호사법에서 규정한 법률사무와는 구별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부동산 매수인이 매매목적물에 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 등을 인수하는 한편 그 채무액을 매매대금에서 공제하기로 약정한 경우, 채무인수의 요건에 관한 분석 등을 통해 채무인수의 법적 성격을 가리는 행위는 단순한 사실행위가 아닌 법률사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공인중개사가 부동산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채무인수의 법적 성격까지 조사·확인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중개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채무인수의 법적 성격에 관해 조사·확인해 설명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신의를 지켜 중개행위를 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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