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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혼죄 도입, 일부일처제 보호를”

작성일 : 2024.11.20 조회수 : 69
‘헌법과 가족법’ 공동학술대회
간통죄 폐지로 형사 처벌 불가
형사적 구제 방법 만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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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상 보장된 일부일처제 혼인과 가족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배우자가 있는데도 내연남(녀)과 가정을 꾸리는 등 사실혼 수준의 외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상 중혼죄를 둬야 한다는 현직 부장판사의 주장이 나왔다. 중혼죄란 아내나 남편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시 혼인함으로써 성립하는 죄를 뜻한다. 2015년 헌법재판소가 "간통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은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 배우자의 부정행위에 대해 형사 처벌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때문에 현재는 민사상 위자료를 청구하는 것이 유일한 사법적 구제 방법이다.

정용신(51·사법연수원 32기)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는 1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한국헌법학회와 대법원 헌법·행정법연구회가 개최한 '헌법과 가족법' 공동학술대회에서 '보호장치 있는 파탄주의와 중혼죄의 도입 검토: 축출될 수는 있으나 벗어날 수는 없었던 이들을 위해'를 주제로 발표했다.

정 부장판사는 "배우자가 부정행위 등을 저지른 경우 그의 법률상 배우자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추후 자녀들이 정당한 상속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점일 것"이라며 "상대방이 유언 상속을 통해 자신과 자녀들이 상속을 받을 수 없도록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때 유류분 반환 청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법정상속분의 절반까지만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간통죄가 폐지돼 내연남(녀)에 대한 간통 고소가 불가능해지면서 현재 형사적인 사법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어졌다"며 "나아가 최근에는 부정행위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명예훼손했다는 이유, 부적법한 취득 과정에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나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는 사례까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배우자가 내연남(녀)와 이른바 살림을 차리는 등 중혼적인 사실혼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리어 그 배우자가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경우, 상대방은 유책주의를 이유로 들며 버티다가 끝내 반소를 제기하게 되는 실정"이라며 "때문에 상대방은 축출 이혼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본 등 간통죄를 폐지한 국가 대부분은 형법상 중혼죄 규정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일부일처제 혼인 제도를 보호하는 것이다. 동성 간 등록된 생활 동반자 관계에서의 중혼죄를 인정하는 국가도 있다. 독일은 제3자와 혼인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간통죄를 폐지한 뒤 중혼죄를 형법에 신설했다. 일본에선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거듭 혼인했을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그 상대방도 같이 처벌한다.


영미권의 상황도 비슷하다. 영국의 형법은 중혼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의 모든 주 역시 중혼죄를 인정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중혼을 한 경우 최대 1만 달러의 벌금형 또는 1년 이하의 교도소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정 부장판사는 "형법 제정 당시에는 축첩(蓄妾)의 악습을 방지하기 위해 쌍벌규정의 간통죄를 채택했고, 중혼죄는 옥상옥이라는 이유로 형법에 등장하지 못했다"며 "2015년 헌재가 간통죄에 대해 '잠정 적용 헌법불합치' 결정이 아닌 '단순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배우자의 중혼적 사실혼으로 인해 고통받는 상대방에 대한 사법적 구제가 요원해졌다"고 밝혔다.

아울러 "형법상 중혼죄를 신설한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일부일처제의 혼인제도를 지키는 한편 배우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 사생활의 자유 등 기본권에 대한 침해를 보호할 수 있다"며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파탄주의를 도입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승이도(46·41기) 건국대 로스쿨 교수가 '시간의 측면에서 바라본 헌법과 가족법: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과 재판청구권 보장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했다.

지성우 한국헌법학회장은 "가족의 형태와 구성이 점차 다양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가족법 역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지고 있고, 관련 법 개정의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며 "많은 국가에서 헌법상 가족과 모성보호 원칙과 조화될 수 있는 합리적인 규범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칙적으로 가족법은 새로운 가족 형태와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해석·개정해야 하되, 이러한 규범의 변화는 사회가 수용 가능한 범위와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연욱(56·23기) 대법원 헌법행정법연구회장은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가족의 형태와 기능은 다양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가족법이 규율하는 실제 사이에 충돌과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특히 혼인에서 동성 결혼을 비롯한 다양한 가족 형태의 인정 문제, 이혼에서 파탄주의와 경제적 약자인 배우자의 권리 보호 문제 등에 대해 기존의 가족법 체계가 현실에 맞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학문적 관점, 실무 경험을 가진 여러분들의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족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안정을 동시에 추구할 방안을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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