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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할 권리(Right to Roam)

작성일 : 2024.11.27 조회수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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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상상해 보라. 길도 놓이지 않은 유럽의 한적한 시골 속에 들어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기가 막힌 풍경을 만나게 되는데, 당신이 보게 된 것은? 만약 그것이 탁 트인 호수나, 강, 광활하게 펼쳐진 황야가 아니라, ‘당신에게는 더 이상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통행금지 푯말과 길을 가로막는 울타리라면? 이로써 발길 닿는 대로 걷는 산책이 차단되게 된다면? 우리는 자연과 내가 분절되는 감정을 느끼게 될까? 영국에서는 실제로 대중들이 사유지와 공공지에 접근하여 이를 이용하고 즐길 권리가 제약됨에 따라, 국토의 단 8%의 공간만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대중들은 영국 시골에 지정된 2,500개의 명승지에 접근할 수 없으며 접근할 경우 무단침입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사람들은 불합리함을 느끼게 되었으며, ‘배회할 권리(Right to Roam)’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배회할 권리란 보호구역 등을 제외한 토지에서 야외활동, 운동, 교육 등을 할 공공 접근권이 법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리의 제약은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지역 봉쇄를 겪으며 차별 문제로 두드러지게 되었다. 정원이 있는 사람들은 정원이 없는 사람들보다 특권을 누렸고, 녹지 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연과 야외에 접근할 수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집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봉쇄 기간 동안 사람들은 개방된 공원으로 몰려들었는데, 이를 통해 대중들에게 사용이 허용된 녹지 공간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자연의 경험조차도 그것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상품이 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배회할 권리 운동을 하는 이들이 자연 보존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더 나아가 자연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토지의 사유화가 영국의 토지를 망가뜨리고, 생물다양성을 해쳤다고 주장한다. 소유권에 가로막혀 토지, 수질 등의 오염이나 생물다양성 손실과 같은 자연의 훼손을 감지하기 어려워졌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돌보고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자연과 연결되는 감각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영국에서는 공간 제약이 생김에 따라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국토로부터 시민들이 배제되는 관행과 법률을 종식시키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영국 북쪽의 스코틀랜드는 이미 2003년 토지 개혁법(Land Reform Act 2003)을 통해, 전국을 걷고, 캠핑하고, 자전거를 타고, 수영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토지개혁은 1) 국유지, 사유지에 상관없이 산, 들, 호수 등 모든 공개된 공간의 자유로운 통행 보장(Access Rights)뿐 아니라, 2) 공동체의 토지매입 우선권(The Community Right to Buy), 3) 소작농 공동체에 의한 농지매입 우선권(The Crofting Community Right to Buy)도 포함하고 있다. 즉, 지역사회와 토지 간의 우선적 연결성을 강조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스칸디비아 반도의 여러 국가들도 관습적 또는 성문법적으로 ‘배회할 권리’를 인정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접근권이 무조건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접근 사용자와 토지 관리자 모두에게 ‘책임’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배회할 권리’에 대한 운동을 하는 이들이 내놓은 법안 또한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배회할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 이유 자체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고 훼손된 경관을 복구하기 위함이기에 대중들은 이러한 목적을 지키는 한도에서 자연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와 같은 포괄적 권리가 인정된 이후 20년 넘게 잘 작동해 온 만큼, 영국에서도 이러한 권리가 법으로 명시될 필요가 있다고 설득한다. 한편, ‘배회할 권리’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영국 노동당은 최근 다시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어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지현영 변호사(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지구법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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