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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살인 허구 괴담 '치악산', 영화 속 실제 지명 명예 못지키는 이유

작성일 : 2023.09.15 조회수 :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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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로 만들어진 괴담에 실제 지명을 제목으로 한 영화는 개봉할 수 있을까. 실제 지명을 쓴 영화 측과 지역 사회는 늘 갈등을 빚었으나, 재판부는 영화사의 손을 들어줬다. 관객은 진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있고 표현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는 헌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 '치악산'은 개봉 전 원주시와 대한불교조계종 구룡사 등과 법정 다툼을 벌였다.

영화 '치악산'은 1980년대 치악산에서 18토막이 난 시체가 10구가 발견됐다는 내용이다. 존재하는 괴담이 아니라 허구로 괴담을 만들어 모티브로 삼았다. 원주시는 지역 이미지가 훼손된다는 이유로, 치악산 구룡사와 지역 농·축협 등도 치악산 관광과 경기 위축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박범석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12일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명백한 허구의 내용을 담은 영화에 불과하며 치악산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산의 명성이 훼손되거나 부정적 인상을 주지는 않을 거라 봤다. 또 영화 상영 등 표현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23카합21133, 23카합21136)

'치악산'과 비슷하게 실제 지명을 제목으로 썼다가 지역과 갈등을 빚은 사례는 부지기수다.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에 있었던 곤지암 남양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곤지암'(2018)이 대표적이다. 정신병원은 실제로 존재하고, 국내 3대 흉가로 꼽히는 장소이긴 하지만 영화 설정이나 스토리는 창작이다.

정신병원 부지 소유자는 '곤지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김상환 수석부장판사)는 "소유주 개인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므로 소유주의 명예와 신용이 훼손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괴담이 영화 제작 한 참 전 세간에 퍼졌기 때문에 영화 상영 및 특정 표현을 금지시켜야 할 피보전권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2018카합20220).

2016년 개봉한 '곡성'도 일부 주민의 반발에 부딪혔다. 당시 유근기 곡성군수는 "우려를 뒤집어 생각하면 기회가 된다"며 영화의 흥행을 지역 인지도를 높이자는 기고문을 발표했다. '곡성' 제작사는 전남 곡성의 이미지에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한자를 함께 적어 표기했고, 자막으로 허구의 내용임을 내보내기로 합의했다.

재판부는 영화 제목 때문에 지역 이미지가 실추된다고 예측하기 어렵고, 관객은 허구와 사실을 구분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미국과 영국 등 외국에서도 실제 지명이 제목에 쓰인다고 해도 상영이 금지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가 상영 금지되는 경우는 영화의 잔혹함과 모방 범죄 우려 때문이다. 연쇄살인마가 납치한 피해자를 고문하거나 살해하는 내용을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푼 미국 영화 '더 포킵시 테잎스'는 너무 공포스러워 개봉이 금지됐다. 영국은 1971년 개봉된 '시계태엽 오렌지'로 인해 모방 범죄가 발생하자 상영을 금지시켰다. 10대 소년의 폭행, 절도, 살인 등 극악한 비행이 주 내용으로 27년 동안 상영금지가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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