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실무

NewsHome · 소송실무 · News

[신년기획][판결문 전면공개를 향하여] ① 국내 판결문, 기본권 침해 우려해 공개 확대 꺼려

작성일 : 2024.01.01 조회수 : 242
2019~2022년 민사·형사·행정 법원 판결 건수 중 ‘전자 공개 판결문’은 45%

194565_0.jpg

194565.jpg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09조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법률가인 변호사조차 판결문을 구하지 못해 판사나 기자에게 요청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대한민국 대법원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 열람을 할 수 있지만, 한 달이 다 되도록 ‘해당 판결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비실명 처리 중이며, 처리완료 후 열람이 가능하다’는 문구만 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인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재판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판결문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I 시대를 맞아 리걸테크 시장의 발전 추세에 걸맞는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라도 판결문 공개는 필수적 과제다. 미국과 유럽, 심지어 중국도 판결문 공개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며 데이터베이스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4년 ‘갑진(甲辰)년’ 새해를 맞아 우리 사법부의 판결문 공개의 현 주소를 짚어본다.


미국 등에선 ‘공개가 원칙이고 비공개가 예외’이지만 우리는 기본권 침해 우려를 명분으로 판결문 공개 확대를 꺼린다.

 


점진적 확대… 그러나 여전히 미약

2023년부터 우리 법원은 2023년 1월 1일 이후 선고되는 민사(행정·특허 포함) 사건의 미확정 판결문도 법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형사 미확정 판결문과 민사·행정·특허 사건의 소액사건 판결문, 상고이유서 미제출 기각, 심리불속행 기각, 변론 공개를 금지한 사건, 비밀 보호를 위한 열람 제한 결정이 있는 사건의 판결문은 검색·열람 대상에서 빠져있다.


이전부터 2013년 1월 1일 이후 확정된 형사 사건 판결문(증거목록 등 포함)과 2015년 1월 1일 이후 확정된 민사·행정·특허 사건 판결문에 대한 검색·열람은 가능해졌다. 문제는 대상 자체가 2013년, 2015년 이후 확정 판결이어서 그 이전에 선고된 판결문은 홈페이지 상에서 열람할 수 없다. 게다가 판결문 1건당 1000원이라는 비용을 지불해야 해, 사실상 여러 판결문을 찾을 경우 금전적인 부담이 수반되는 실정이다.


법원행정처 통계 자료와 연도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9~2022년 4년간 민사, 형사, 행정 사건의 전체 본안 판결 건수(미확정 판결 포함)는 △2019년 93만938건 △2020년 92만5999건 △2021년 89만1361건 △2022년 83만4799건으로 집계됐다. 다만 2022년까지는 형사 사건 뿐만 아니라 민사, 행정 사건 등도 확정 판결만 등록돼 인터넷 열람 서비스에 올라간 판결 건수는 △2019년 41만4270건 △2020년 42만5537건 △2021년 41만718건 △2022년 41만8288건으로 해마다 약 45%였다.


그러나 서비스가 불편하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서초동의 한 청년 변호사는 “판결문을 제공하는 것은 좋은데, 결제할 때마다 창을 닫으라고 하거나 재부팅을 하게 되고, 가끔 랙이 걸리기도 하는데 일부러 이렇게 불편하게 만든 건가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중견 로펌의 한 변호사는 “최근 판결문은 검색해도 비실명 작업이라는 등의 이유로 바로 열람할 수 없고 열람은 해도 비실명화가 심각한 경우 누가 누군지 몰라 활용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열람 외 검색 방법은

대법원은 2003년부터 종합법률정보 시스템을 통해 1996년 이후 일부 대법원 판례 전문을 공개하고 있다. 또 하급심 판결의 경우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방법, 판결서 사본 신청을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판결문을 즉각적으로 받아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특히 판결서 사본 제공 신청에 따른 판결문 제공률은 50%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일산 법원도서관의 ‘판결정보 특별열람’ 서비스를 통해 일반인에게도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다. 법원도서관을 방문하면 비실명화 처리가 되지 않은 판결문을 볼 수 있지만, 전국에 단 1곳뿐이며 법원도서관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장에서는 열람만 할 수 있고 사진을 찍는 행위 등을 하면 바로 직원에게 제지를 받는다. 법원도서관이 서초동에서 일산으로 이동한 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AI 시대 도래…판결문 전면 공개 필요

이른바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판결문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 세계적으로 리걸 테크 혁명이 시작되고 있는데 그 원료가 되는 판결문 공개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것이다.


법원 내 IT 전문가로 손꼽히는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송백일기를 통해 “법원이 독점 중인 생 판결을 전면 공개하는 ‘잠자는 백설 공주 깨우기’가 절실하다”며 “AI 시대의 원료 데이터로도 판결문 전면 공개가 필수 요체”라고 밝혔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도 “AI 시대에는 투명하고 개방적인 법적 정보가 더욱 중요한 만큼 법원의 판결문 공개를 확대해 시민들에게 더 많은 법적 투명성을 제공하고, 민주주의 원칙을 강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한국 법원은 일부 사건에 대한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고 있어 시민들의 접근성이 부족한데 해외 선진국에서는 법원 판결문을 대규모로 공개하고 있고, 이는 법적 투명성과 열린 사회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박수연·한수현·이용경 기자>

qu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