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가 검찰 지휘 받나”… 감사원 간부 15억 뇌물 사건 수사 보완 요구 거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찰이 감사원 간부 뇌물 수수 사건을 두고 책임을 미루는 ‘핑퐁 논란’을 빚었다. 검찰이 보완수사를 맡기로 해 일단락됐지만, 제도적 보완 없이는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소권이 없는 사건에서 공수처 수사권의 상당 부분이 입법 공백 상태이기 때문이다. 법조에선 피의자의 구속영장 기간 문제도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핑퐁’ 배경에 공수처 ‘경찰 전락 우려’
19일 법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감사원 3급 간부 뇌물 수수 사건을 반부패수사1부(이준동 부장검사)에 배당하고 직접 보완수사를 할 예정이다.
이 사건은 감사원 간부 김모 씨가 2020년 SOC 분야 감사를 진행하며 기업으로부터 15억 원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감사원으로부터 수사 요청을 받은 공수처는 지난해 11월 김 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올 1월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공수처로 재이첩했지만, 공수처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사건 접수를 거부했다.
공수처가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를 끝내 받지 않은 배경에는 ‘사법 경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소권이 없는 사건에서 검찰의 보완수사를 수용할 경우, 자칫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는 사법 경찰처럼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선 공수처의 이런 입장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한 검찰 간부는 “공수처가 기초적인 수사마저 안 된 채 기소 의견으로 넘기면, 검찰이 그대로 기소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제도 공백 ‘구속 최장 40일’ 될 수도
두 기관의 갈등은 공수처의 이중적 지위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분석이 많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다른 공수처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공수처는 대법관, 검찰총장,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에 대해서만 직접 기소할 수 있다. 나머지 고위공직자 사건에서는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권이 없다.
2019년 국회에서 공수처 설치 논의가 진행될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부여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합의 과정에서 기소권이 제한됐는데, 사건 처리 절차와 권한 범위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채 제도적 공백으로 남았다.
특히 구속영장 처리 과정은 제도적 공백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공수처법 제8조 4항은 공수처 검사에게 검찰청법상 검사의 직무를 준용할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공수처 검사는 기소권이 없는 사건에서도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 받으면 최장 20일까지 구속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후 검찰로 사건이 송치되면, 검찰 역시 별도로 20일까지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어 피의자가 최장 40일간 구속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형법 전공 로스쿨 교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돼 아직 이런 사례가 나오진 않았다”면서도 “구속기간은 피의자 보호를 위해 제한하는 것인데, 현행 법령 구조는 피의자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커 문제가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법조에선 사건 처리 절차와 권한 범위를 명확히 하는 입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독립적인 공수처의 특성상 행정부 등을 통해 기관끼리 조율하기 쉽지 않아서다. 한 서울권 로스쿨 교수는 “책임 수사라는 측면에서 수사를 시작한 기관이 보완수사까지 맡는 게 맞다”면서도 “공수처의 독립성도 중요한 문제이므로, 입법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