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관할권 갖는 유럽통합특허법원 출범
유럽연합(EU) 10여개국에서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 '단일특허(Unitary Patent, UP)' 제도가 시행되고 유럽통합특허법원(Unified Patent Court, UPC)이 개원하며 유럽 특허업계가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소송 제도와 판례를 면밀히 지켜보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번의 특허 등록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의 특허 발효가 가능해진 만큼 기업들이 유럽에서의 특허 출원과 지적재산권(IP) 투자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 때란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 6월 1일 단일특허 제도가 시작되고 유럽 특허 소송에 대해 다국적 관할권을 갖는 유럽통합특허법원이 출범했다. 2013년 2월 EU 24개 회원국이 EU 통합특허제도 시행을 골자로 한 통합특허법원 설립에 관한 협정에 서명한 이후 약 10년 만이다.
UPC 법관은 변호사 자격을 지닌 '법률 판사' 37명(9월 말 기준)과 변리사 자격 또는 이공계 경력을 지닌 '기술 판사(technical judge)' 68명으로 구성된다. 기술 판사 제도는 한국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의 심리에 익숙한 국내 기업에 낯선 제도인 만큼 기업들의 전략적 준비와 대응이 필요하다.
"UPC 심리대상·판결 효력 유의해야"
한국은 지난해 유럽특허청(EPO) 특허 출원 건수 국가별 순위에서 6위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 기업들의 유럽 특허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UPC에서 선고된 판결은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17개국에서 효력이 동시에 발생하는 만큼 기업들의 면밀한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9월 말 기준 UPC에서 진행 중인 소송은 67건으로 한국 기업이 연관된 사건은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임보경(53·사법연수원 30기)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UPC 제도 시행과 관련해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UPC의 심리 대상과 판결의 효력"이라며 "심리 대상에는 단일특허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 국가에 개별적으로 출원하는 기존의 일반 유럽특허도 포함되는데, 일반 유럽특허에 대한 UPC 판결의 효력은 그 유럽특허가 등록된 모든 회원국에 미치게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짚었다. 다시 말해 유럽특허는 단일특허로서는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UPC에서 내린 판결의 효력은 유럽특허가 등록된 모든 국가에서 단일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만 7년의 유예기간 동안 유럽 개별 국가에서 소송을 거쳐 유효가 된 일반특허에 대해서는 해당 특허권자가 '옵트 아웃(Opt-out)'을 신청하면 UPC 관할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옵트 아웃 조항을 규정했다. 기업들이 UPC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관할 국가 전체에서 특허 효력이 정지돼 혼란에 빠질 것에 대비한 조치다.
"유럽 기업들과의 소송·특허 경쟁 대비해야"
EU의 단일특허 제도와 UPC 개원으로 인해 기업들의 해외 특허 출원에서 유럽의 존재감이 한층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기업 법무팀에서 지식재산 업무를 담당하는 한 변리사는 "좋은 특허를 가진 기업 입장에선 유럽 단일특허를 출원하면 거의 모든 유럽국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유럽 특허 출원에 뛰어들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은 지금까지 주요 수출국인 미국, 중국에서의 특허 출원에 집중했지만 이젠 유럽 특허에도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UPC가 안방인 유럽 기업들과의 소송전과 특허 출원 경쟁에서 분명 한국 기업들에 불리한 지점이 있을텐데 기업들이 면밀히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IP 전문가들은 이제 유럽에서 UPC를 통한 통합 특허소송 체계가 갖춰진 만큼 우리 기업들이 실익을 잘 따져 소송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승재(52·29기) 클라스 변호사는 "유럽 각국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해야 했던 소송을 단일 법원에서 한 번에 진행 가능하다는 점에서 절차적 간이성이 담보됐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특허침해 소송에서 피소 기업 측 손을 잘 들어주는 등의 특징을 지닌 특정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전략을 취하기 어려워졌다는 점, 패소시 17개국에서 모두 특허 효력이 정지될 위험이 생겼다는 점은 특허침해 소송에서 주로 피소 대상이 되는 한국 기업에 단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법무 대응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UPC 특허소송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정부의 세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UPC 개원이 한국 산업·무역 환경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분석해 기업들에 제공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